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말 중에 하나가 “감사합니다”입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사탕을 받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배꼽인사를 하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주는 사람의 마음이 더 기뻐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이렇게 어렸을 적부터 감사하는 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흰머리가 하나 둘씩 생기는 나이가 되어서 가만히 인생을 돌아보면 감사하는 것이 참 쉽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반면에 불평과 원망은 어찌 그리도 쉽고도 자연스럽게 나오던지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불평과 원망의 찌거기로 온통 얼룩져버린 시간은 너무나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감사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어렸을 적부터 감사합니다는 말을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일이 많으면 감사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받은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풍요에 익숙해져버려 조금의 결핍도 견디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기 일쑤입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받으면 당연히 감사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선물을 받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힘든 시기를 지나가는 이들이 그 시기를 헤쳐 나가기만 하면 감사할 것이라고 쉽게 말을 하지만 막상 그 힘든 시기를 끝냈을 때 감사보다는 힘든 시기를 거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원망과 탄식이 남을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때때론 입술로는 “감사합니다”라고 앵무새처럼 외우지만 마음 속엔 진심이 없는 요새 말로 영혼이 1도 없는 주문처럼 외우고 다닐 때가 더 많습니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감사를 잊어버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감사해야 할 대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누군가로부터 좋은 것을 받았다는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감사를 하려며 그 좋은 것을 누가 주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가는 단풍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그것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주신 분이 누군인지를 알 때입니다. 예수님은 10명의 한센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 오직 1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했습니다. 열명 중 오직 한 명만이 예수님께 감사해야 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는 그냥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감사는 늘 종교적인 행위였고 영적인 행동이었으며 본능에 지지 않는 인격의 발현이며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성숙의 척도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감사로 제사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는 시편 50편의 말씀을 통해 감사는 삶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로 바꾸는 권능임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 인간관계와 일들, 환경과 형편…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자는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인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자는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자각하는 이는 그것에 올바른 반응을 내놓게 됩니다. 주어진 부와 권력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자각하는 자는 겸손의 옷을 입게 되며 지금 내가 헤쳐 나가는 시련의 터널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자각하는 자는 소망을 붙잡고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처럼 감사는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놀라운 열쇠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헹여나 잊어버리고 있었던 감사를 회복하고 우리 삶에 부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삶으로 그 분에게 영광을 돌리며 그 은혜에 마땅한 반응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게 되길 소원합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