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엠마오로 가던 2명의 제자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여전히 믿지 못하며 엠마오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에서 예수님이 그들과 만나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참 아이러니 한 장면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신지 모릅니다.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죽었다고 여깁니다. 주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부활의 사실은 믿지 못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냐고 예수님에게 핀잔을 줍니다.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을 훈계하듯 예수님을 대하는 것이 바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강조하기 힘들 정도로 강조하십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분명한 사실을 내 삶 속에서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는 그 분명하고 확실할 것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엠마오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입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그들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마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말을 다 알고 그 의미마저 다 아는 것처럼 오만하게 이야기를 하며 그것을 혼자 모르고 있는 듯한 예수님을 답답해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자신들이 상황과 형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알아야 할 것, 믿어야 할 것은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상황과 형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여깁니다. 심지어 그 상황과 형편을 이겨낼 묘책에 대해서도 자신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답답함을 드러내고 자신이 생각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못미더워 합니다.
그러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이 믿을 만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증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눈이 가리어져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해결점은 가리어진 눈을 뜨는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삶의 현장 가운데 주님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눈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또 다른 증거들을 보여달라고 조르기 보단 이미 충분히 보여주신 그 증거들을 볼 제대로 된 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떼어주신 떡을 먹고 눈이 떠졌습니다. 떡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미 길에서 선지자들을 통해 주셨던 말씀을 설명하셨던 예수님은 그들에게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또한 떡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성찬식을 의미하며 떡을 먹는 것은 성소의 전설병을 안식일에 먹는 것처럼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눈을 뜰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주님 앞에 겸손히 예배드리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삶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면 성경을 펼치십시오. 나의 시선이 가득 담긴 선그라스를 벗어내리고 겸손히 주님 앞에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오늘 하루의 삶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주님 앞에 엎드려 예배드리십시오. 나의 욕심과 목표를 내려놓고 주님이 차려주신 상 앞에서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엠마오로 가던 두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졌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뜨거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그토록 절망적으로 걸어왔던 엠마오로 가던 길이 주님과 동행했던 은혜의 길임을 깨닫게 되며 다시는 걷고 싶지 않았던 그 길을 다시 걸어 그 길에서 자신들과 함께 하셨던 살아계신 주님을 세상에 전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