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커피애호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빼먹지 않고 커피 한잔을 마십니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이 제가 처음 커피를 접한 것은 자판기 커피였습니다. 그 인스탄트커피 맛에 길들여져 그게 커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군에 있을 때 처음으로 커피원두를 갈아서 내린 드립 커피와 헤즐넛 커피를 맛보고 충격을 먹었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 내가 먹었던 것 커피가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이 온 것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한 동안 제 커피의 기준은 드립커피였습니다. 그러다가 캐나다에 와서 처음 에스프레소를 접하고 난 뒤엔 제 커피의 기준은 한 단계 더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요즘 조금 걱정이 됩니다. 조금 더 높은 단계에 눈을 뜨면 어쩌나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조금 더 높은 단계에 눈을 띄면 이전 단계에 절대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그렇게 맛있게 마시던 커피가 더 이상 맛있게 느껴지지 않게 되고 감사함이 사라져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커피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하는 이유는 만족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현재 살아가는 삶 속에서 만족함을 누리길 원합니다. 그리고 가진 것이 많으면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우리는 흔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가별 삶의 만족도를 보면 결코 경제력이 높은 나라의 만족도가 월등히 높지 않은 점, 심지어 제 3세계라고 불리는 빈곤국가들 보다 낮은 것을 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앞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현재 단계에서 주는 만족감을 일시적입니다. 이내 그 만족감엔 만성이 되어 둔감하게 되고 더 높은 단계에 대한 갈증에 시달립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만족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한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거듭남의 종교입니다. 결코 조금 더 나아짐의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것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리셨던 만족감, 그리고 그 분이 우리에게 나눠주시고자 하는 만족감은 결코 좀 더 나은 것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거듭남을 통해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 용어 중에 “해탈(解脫)”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남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불교신자들은 욕망을 버리기 위해 속세를 떠나 그 힘든 수행을 거칩니다. 그리고도 그것을 못 이룹니다. 왜 그럴까요? 만족함을 얻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나, 만족함을 찾기 위해 밑으로 내려가나 결국은 그 계단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참 해탈을 위해선 계단에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기 위해선 죽음이 필요합니다. 십자가에 내 자신을 내 못난 옛 사람을 못박아 죽여야만 그리스도와 함께 거듭난 새 사람을 입게 됩니다. 이젠 우리 안에는 성령이 거하시며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바뀌었습니다. 지금 내가 딛고 선 계단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계단을 아무리 올라간다고 해도, 혹은 아무리 내려간다고 해도 절대 이 새로운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만족함의 근거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그 분의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에 우리의 만족함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만족함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성공이 신앙의 성공으로, 재력의 많음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안락함이 평안함으로 곡해하고 그것으로 삶의 만족함을 찾으려합니다. 익숙한 거짓에 다시 빠져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샘물은 생명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한국은 사실 어디든 깊게만 파면 물이 나오지만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수의 근원과 연결이 되지 않은 곳은 아무리 깊게 파도 물이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물을 채워도 그냥 빠져나가버립니다.
우리의 삶의 만족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에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하고 많은 것을 들인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가 됩니다.
오늘 주어진 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여러분은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갈망하십니까?
시편 90편 14절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원합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