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순간 속에서 우리는 “악”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악”이라는 단어의 중압감으로 “악”이 아주 크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삶 속에서 마주하는 “악”은 아주 소소하고 때로는 그저 살짝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아무튼 크고 작은 “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단호하게 악과 맞서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을 묵과하거나 방관하거나 방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의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라”는 말씀처럼 성경은 우리가 악과 싸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악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정확한 대답이 아닙니다. 네 분명 선은 악과 대립합니다. 그런데 악과 싸우는 것이 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악과 싸우는 악도 있기 때문입니다. 악과 싸우는 악이라는 조금 의아스럽지만 사단은 이 전략을 아주 적절하게 사용해서 우리를 너무나도 쉽게 무너뜨립니다.
쉽게 예를 들어 한 독재자와 불법 다단계 회사의 회장이 서로 마주 앉아 불법청탁을 하는 것을 상상해 봅시다. 독재자는 불법 다단계 회사의 회장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 사기꾼,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저 많은 돈을 모은거지?’, 반면 회장은 독재자를 보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독재자놈, 도대체 얼마는 줘야 이 청탁을 들어주는거지?’ 이 이상한 일화가 전두환정권 당시 일화 그룹(통일교)의 문선명과의 불법청탁 시에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서로를 향해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욕하며 또 다른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은 악을 욕하며 또 다른 악으로 그 악과 싸우도록 합니다. 서로를 욕하고 비난하고 심지어 혐오하지만 선은 결코 아닙니다. 또 다른 악일 뿐이지요.
악과 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결코 모든 것이 선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단은 악과 대항에서 싸우는 모든 것이 선이다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반면 성경은 우리에게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최근 인종차별과 혐오의 문제가 큰 이슈입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 사망 사건이 불씨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흑인들이 받고 있는 잘못된 대우가 해결되도록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흑인들이 받았던 그 그릇된 행동들에 대한 분노가 다른 이들을 향한 폭력으로 혹은 혐오로 바뀌게 되면 안타깝게도 그것은 악과 싸우는 또 다른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다른 답을 주십니다. 첫 번째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입니다. 우리가 왜 악으로 악을 대항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복수심 때문입니다. 악을 심판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악은 심판을 받아야 하고 그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심판을 공정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인류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먹은 뒤로 서로의 행동에 대해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해 버립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은 죄로 인해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의 모습은 깨어지고 오염되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즉 우리는 쉽게 정죄하지만 공정하고 정의롭게 심판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심판은 하나님께 있다고 우리에게 단언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유일하게 심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으로 우리를 심판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한 악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선으로 갚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절정입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은 온 우주적인 사건으로 우리 모두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죄인이지 결코 심판자가 아닙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선으로 우리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은혜를 누리며 은혜를 빚진 우리 모두에게 너희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가 만일 악으로 악을 이기려고 한다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정죄하고 심판하려는 자리에 선다면 우리는 심판받아야 할 이가 심판하는 빌라도의 법정의 오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박해자를 위해 축복하며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서로를 판단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스스로 옳은 척 하는 위선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도 “악한 것에는 미련하고 선한 것에는 지혜롭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