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초기에 캐나다에 정착을 하면서 불편을 느꼈던 것은 중에 하나가 바로 병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동네의원이나 큰 종합병원에서 의료혜택을 누리지만 이곳 캐나다는 그렇지 못합니다. X-ray 사진을 찍는 것조차 몇 번이나 예약을 하고 대기를 해야만 하죠. 그러다 보니 아플 때 한국병원 생각이 많이 납니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선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바로 “병든 자들을 고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치시는 의사로 오셨습니다. 그 분에게 나오면 그 어떤 병도 고쳐주시고 우리를 온전하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답답해 하시는 것은 병든 자들이 의사이신 예수님에게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나오지 않은 이유는 너무 단순합니다. 자신들은 건강하다고 생각했기에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가장 심각한 환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 때가 많습니다. 많은 병들이 초기 병증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19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무증상감염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이 바이러스에 걸렸으나 아무런 증상이 없기에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치료의 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 무방비로 바이러스를 옮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의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여러 가지 죄악의 바이러스로 인해 심각하게 병에 걸렸음에도 때때로는 삶 속에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자신은 건강하다고 여기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그 병이 너무나도 깊어져서 치료의 시기를 놓쳐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그 대표적인 예로 등장하는 이가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죄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죄인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은 의인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의 겉모습은 꽤 괜찮아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의 병을 치료할 시기를 놓치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문제가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이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이 병들었고 치료받아야 함을 잘 알고 있고 간절히 의원이신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치료를 받아 온전한 삶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삶에서 아픈 증상이 나올 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만드는 도구들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와 나를 넘어지게 만드는 삶의 문제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붙들게 만드는 사도바울의 가시와 같습니다.
헹여 나는 지금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지낸다고 생각이 된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정말 잘 지내는 것과 병에 걸린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이럴 때에도 답은 좋은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검사를 받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적 병원은 살면서 가능한 안 가면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병원하고 친해져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병원에 가서 미리 미리 검짐도 하고 병에 대해 예방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필요를 못느끼고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되면 결국 우리의 삶은 파국으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을 필요로 하십니까? 돈이 필요한 만큼 주님이 필요하십니까? 주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이 바로 우리 영혼이 심각한 병에 들린 증상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천국에 더 가까웠던 이유는 그들이 삶 속에서 주님이 필요함을 느끼고 죄인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삶의 문제들 속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삶을 주님 앞으로 내어놓으십니다. 우리를 위해 오신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새롭고 온전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함이 우리의 삶에 복입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