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바라봅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과거 중세에는 성상이라는 예수님이나 성인들의 조각품들, 혹은 성화나 유리창에 모자이크를 만들어 두고 그것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기도하며 그 성상이나 그림들을 바라보며 삶 속에서 소망을 품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십자가 목걸이나 악세사리등을 몸에 걸치거나 주변을 장식해 두고 그것을 보며 믿음을 환기하기도 합니다.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이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인 이와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보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중요한 관점이 담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주 특별합니다. 그들은 온 우주 만물 속에서 수로 이루어진 수학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 법칙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쉽게 말해 공식이 있다는 것이죠. 사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는 수천개, 수만개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답을 구하는 공식은 하나입니다. 수학자들은 바로 이 본질(공식)을 이해하면 수 많은 변화(문제)는 쉽게 풀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그 문제에 매몰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사실 우리는 그 문제보다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공식 하나가 수 많은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이 삶의 문제를 푸는 핵심입니다.
집중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면서 동시에 무척이나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에 친구와 심하게 싸운 적이 있습니다. 처음 주먹을 휘두르고 싸울 때 어찌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떨렸고 주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애들 주먹다짐도 그런데 격투기 선수들이 링 위에서 싸울 때는 어떨까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상대방의 펀치와 킥을 피하도록 얼마나 집중할까요? 그런데 격투기 선수들은 결코 상대방에게만 집중해선 안됩니다. 그들은 온 신경을 상대선수에 두지만 동시에 링 밖에서 외치는 코치의 목소리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좋은 선수는 혼자 경기를 진행하는 자가 아니라 코치의 지도를 따라 원팀이 되어 경기를 이끄는 자이기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삶 속에서 부딪히는 수 많은 문제들과 삶의 현장에 집중해야 합니다, 결코 이것을 가볍게 여겨선 안됩니다. 만일 삶의 현장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긴다면 그런 신앙은 이단들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또 반대로 삶의 문제들에만 너무 과몰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그는 마치 하나님 없이 혼자 살아가는 무신론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 삶이라는 링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우리를 향해 지금도 쉬지 않고 외치는 진정한 코치이신 우리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 홀로 이 링 위에서 싸우지 않기 위해 나를 위해 외치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지도에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가 주님의 음성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귀를 가리고 막으려 합니다. 마치 격투기 경기장의 관중들의 환호와 소음(관중들의 어설픈 코칭)으로 코치의 목소리가 가려지는 것처럼 주님의 목소리를 가릴 더 큰 소리를 만들어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은 이 속임수에 능숙합니다. 하와를 속일 때 사단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탐스러운 선악과 열매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약속의 자손을 기다리고 있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겐 새로운 아내, 하갈이라는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사무엘을 기다리던 사울에겐 눈 앞에 적군을 앞둔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당장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상황과 형편에 맞아 보이는 합당한 핑계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 그럴 듯해 보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소음 뒤에는 여전히 변함없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사단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더 그럴싸한 소음에 주님의 소리가 가려져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예배와 말씀묵상입니다. 예배드림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말씀묵상을 통해 우리는 삶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세밀하고 은밀한 가운데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매일 매일 일변하는 삶의 현란하고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그 안에 흐리는 공식같은 주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그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년여 동안 지속되었던 팬데믹이 차츰 안정되며 돌파구를 찾아갑니다. 처음 겪는 팬데믹동안 우리의 삶에 주님의 음성이 아니라 다른 소리에 집중하고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이 있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 주님의 음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세계 최강의 한국 양궁 선수들은 경기 중에 집중력이 흐트려지지 않도록 수많은 다양한 훈련을 합니다. 그들은 수많은 관중들의 소음 속에서도 변화무쌍한 바람 속에서도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과녁을 바라봅니다. 오늘 이 시간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을 바라봅시다. 주님께 집중합시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