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온갖 편법을 거짓을 활용하여 약삭빠르게 살아가며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그런 방법을 활용하는 자신을 아주 똑똑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그들이 누리고 얻고 있는 것들이 부러워 보여 나도 저렇게 해볼까하는 유혹이 든 적이 수차례였습니다. 어쩌면 내 자신이 너무 미련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들의 삶에 맺어지는 열매가 결코 아름답지 못함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쉽게 쉽게 누리고자 했던 편법의 길로 인해 다른 이들이 피해를 보기도 했고, 심지어 다른 이들의 길을 막아버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이 바로 그러한 결코 아름답지 못한 열매를 자랑스러워하던 이들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은 그 정체성으로 인해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 속한 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노예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오늘 주목했으면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주인들은 노예였던 자신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주인은 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형제처럼 그들을 대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노예였던 이들에겐 절대 손해볼 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또한 주인에게서 노예가 아닌 형제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몇몇 노예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주인이 무엇인가를 시키거나 요구하면 그들은 주인의 명령을 무시하고 때로는 오히려 주인에게 자신에게 명령하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고 형제로 받아들인 주인을 무시하며 주인에게 “하나님 나라의 법”의 잣대로 자신을 대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으나 자신들이 소유한 노예들에겐 믿음을 허락하지 않거나 혹은 노예들이 주님을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같은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폭압으로 다스리려던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로 인해 “세상 나라”에서 손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했던 사도바울을 통해 바로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방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선 하나님이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기 전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모시고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로마제국의 정치제도를 옳다고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패배한 적국의 포로를 노예로 삼고 그 노예를 재산의 일부로 여기던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성을 폄훼하거나 어린이나, 장애인을 멸시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시대의 모범시민이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높은 수준의 질서의식과, 도덕적 규례, 바른 생활 규범등을 통해 이 시대에서 칭찬받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정의, 인애와 사랑이라는 높은 수준의 잣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규범들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에 스스로 하나님 나라의 높은 기준을 우리 삶에 적용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는 이 멍에를 스스로 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모범시민으로 살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존경받는 자가 되어 세상의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성실하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성공자의 길이 아니라 낮아지고 섬기는 자리에 서는 것이 목표여야 합니다. 면류관이 아닌 십자가가 내 삶의 방향성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자리에 섰던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들러리도 몰아내고 주인공인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우리가 모범시민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창문이기에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 예물을 “고르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기에 사람이 결코 그 주인이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취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니 더 이상 내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악용하여 부모를 공경하거나 가족을 돌보는 데 재물이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재적으로 “고르반”이라고 하여 자신의 것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것을 막아버렸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법을 세상의 탐심을 위해 악용하는 것이죠.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기쁘게 매고 이 세상 속에서 작은 예수로 주님과 함께 고난받으며 주의 길을 걷다가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함께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