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스는 7살에 유다의 왕으로 즉위합니다. 7살,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 나이에 그 자리에 앉은 것이 복일지 저주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왕위에 앉은 것은 결코 그의 노력이나 능력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합의 딸이었던 아달랴가 자신의 아들인 아하시야가 전쟁에서 죽자 다윗의 후손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손자들을 다 죽이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그 가운데 여호사브앗과 제사장 여호야다의 기지로 요아스만이 목숨을 건집니다. 그리고 그가 7살이 되던 때에 제사장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몰아내고 다윗의 후손인 요아스를 유다의 왕으로 세웁니다.
그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그가 아하시야의 아들이며 다윗의 정당한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그 약속이 바로 요아스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고 지켜나갔던 제사장 여호야다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요아스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속으로 거부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좋은 혈통을 이어받은 자로서 그저 자동적으로 받는 놀라운 성공의 발판들을 볼 때면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겨질 때도 있고 차별받는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금수저, 다이아수저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요아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그렇게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거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삽니다. 어느 것 하나 자격 없음에도 우리는 그 사랑과 은혜를 거저 누립니다.
왕이 된 요아스는 처음에는 참 괜찮은 삶을 살아갑니다. 성전을 수리하고 나라를 개혁하며 아달랴 여왕이 무너뜨린 유다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회복시키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런데 요아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급격하게 변질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아달랴 여왕이 했던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왕이 된 것은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그 왕이 된 자리를 자기의 힘으로 지켜나가려고 했던 것같습니다. 어쩌면 제사장 여호야다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도 있고 제사장의 힘을 제한하기 위해서 일부러 우상을 선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요아스의 이런 악행은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극심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결국 그는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신을 왕으로 지지해 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를 하나님의 전 안 뜰에서 죽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에게 은혜를 준 하나님과 제사장 여호야다를 향한 거부와 배신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심판받고 아람군대에 의해 죽게 됩니다. 더 비참한 것은 그가 왕이 된 가장 큰 이유였던 다윗의 후손이라는 명백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윗의 후손 왕들이 묻히는 왕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고 버림받습니다.
스가랴는 죽기 전에 하나님께 자신의 죽음을 감찰하고 신원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자리에서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죽임을 당한 선지자 스가랴를 언급하심으로 하나님이 그를 잊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캐나다에 나그네로 와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애쓴 것으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은혜를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이민 초기에는 작은 것에도 감사합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매일 살아가는 가운데 작지만 주어지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저 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심해지면 어느 순간 은혜는 사라지고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삶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져 지금까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오롯이 내 힘과 능력으로 지금까지 살아냈던 것처럼 또 그렇게 앞으로도 살아갈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찾아오면 나그네로서 주어진 오늘의 삶은 선물같은 은혜로 와닿는 것이 아니라 버거운 짐, 답답하고 짜증나는 답이 없는 문제로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는 쉽게 이런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은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고 있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일의 나도 하나님이 만들어 가실 것을 믿을 수 있고 그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으로 한 걸음 내 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