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우리는 레위기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것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예배의 중심은 예배를 드리는 자가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중요한 개념은 비단 예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그 단적인 예가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단순히 하나님께 헌금을 하라는 것 이상의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특별히 레위기에서 말씀하시는 십일조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것으로 드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레위기는 전반부에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때 예배를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것으로 드릴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정결법(정결한 동물, 질병진단, 절기, 예물드림)에 대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것을 드릴 것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바로 그러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삶의 태도의 표본으로 설명되어집니다.
십일조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세금처럼 잘 바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십분의 일을 드리는 행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드려야 하는가?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생활을 끝내고 가게 될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산이라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나님의 주시는 것으로 먹고 삽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들은 생산활동을 합니다. 그 생산을 통해 그들은 무엇인가를 얻게 됩니다. 이 생산활동을 통해 얻는 것으로 하나님이 주신 땅에 대해 감사하고 자신들이 지금 거둔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인정하는 즉,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많은 생산을 위한 탐욕으로 그들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깁니다. 그 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땅에서 그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위해 살다가 오히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헛된 우상과 거짓 신들의 노예로 전락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삶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수고하고 애씀으로 그 결실을 얻고 그것으로 우리의 삶의 필요한 것들 채워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많은 결실을 맺기를 원하고 더 풍성해지길 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풍성히 거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거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먼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의 생산한 것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십일조는 남는 것의 십분의 일이 아니라 소득의 십분의 일을 먼저 떼어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와 목적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이유는 그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만 잘먹고 잘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그들의 삶이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도록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 중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먼저 내어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즉, 나에게 이 모든 것을 베푸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것을 먼저 돌려드림으로 하나님을 위해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드린 것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것으로 드려지길 원하는 모습으로 세워지는 안전장치를 두시길 원하셨습니다. 단순히 물질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겠다”고 말라기를 통해 약속하십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