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는 밀려드는 독일군을 막기 위해 국가의 사활을 건 당시 마지노 국방장관의 이름을 딴 마지노선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합니다.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선을 이때부터 마지노선이라고 부릅니다.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고별설교를 통해 그들에게 일종의 마지노선을 이야기하십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여호수아가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여호수아서의 마지막에 나오는 그의 고별설교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제 가나안 땅에 도착했고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데 아직도 마음에 결정을 하지 못한 자들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결정을 하라. 나는 여호와를 선택했다”입니다.
인생은 늘 결정을 요구합니다. 이것을 선택할지 저것을 선택할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하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책임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리는 잘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의 순간에 머뭇거리게 되고 또 지난 선택에 대해 늘 후회가 남는 것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지노선과 같은 선택의 기점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나누고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러한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대로 그의 후손을 애굽에서 건져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광야에서 끊임없는 불순종과 원망을 보여준 이스라엘 백성은 그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그러기에 여호수아는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 안에서 최후의 선택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결정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각오나 호기어린 다짐과는 다른 것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따르기로 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에 순종하고 따를 때의 축복과 반대로 율법을 어길 때의 저주에 대해서 수차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며 그 안에서 주어지는 자유와 축복을 누리되 그것을 벗어났을 때의 받게 되는 형벌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우리 삶의 주권을 하나님에게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을 살기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코 어떤 것도 하나님 보다 높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여호수아의 결단을 촉구하는 고별사는 이어지는 사사기의 내용으로 미뤄봤을 때 이스라엘백성의 진정한 결단으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호언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가나안 땅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우고 그들의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가나안의 풍요 속에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선택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그들의 마음을 주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뤄가시며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기에 마지막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똑 같은 실패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결단해야 합니다. 가나안의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가나안은 오히려 타락의 거름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믿음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