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의 식도는 얇은 비닐 막과 같아서 제 때에 수분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말라붙어버린다고 합니다. 때문에 사슴은 물을 오랫동안 마시지 않으면 이 얇은 막이 말라버리고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슴은 반드시 주기적으로 물을 반드시 마셔야 합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천적과 사냥꾼들은 사슴이 물을 먹으로 오는 시냇가에 매복하여 기다립니다. 사슴이 반드시 물을 먹으로 올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슴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압니다. 경계심이 많고 겁이 많은 사슴의 예민한 후각과 청각은 시냇가에 숨어있는 사냥꾼의 인기척을 벌써 알아챕니다. 그러기에 사슴은 쉽게 시냇가로 가지 않고 갈증을 참고 참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사슴은 사냥꾼의 인기척에도 불구하고 시냇가로 가 물을 마십니다. 그 어떤 사슴도 결코 타는 목마름을 이겨내고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즉,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갈급함은 단순한 갈증의 해갈이 아니라 물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다른 모든 것은 뒤로 하고 오직 물을 향해 나가가게 만드는 생명을 건 갈급함이라는 것입니다. 갈급함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입니다. 목이 타는 고통을 느끼며 물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그 갈급함이 결국은 물을 마시게 만들고 생명을 이어나가게 합니다. 만일 사슴이 그러한 갈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시냇가에 숨어 있는 천적이나 사냥꾼을 향한 두려움이 앞서 결코 물을 마시지 않을 것이고 결국은 수분부족으로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갈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지난주에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따르는 갈망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육체의 썩어질 열매만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슴이 갈증을 참다 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모든 위험을 무시하고 시냇가를 향해 나아갔는데 그 시냇가엔 물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성경은 이 끔찍하고 비참한 일에 대해서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남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며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2:13)”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떠나 그들 자신들의 생각대로 이방 종교를 탐하고 군사력을 탐하고 외교에 기대어 살아남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물웅덩이는 물을 채울 수 없는 터진 웅덩이었고 결국 패망이라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는 갈증으로 찾아간 시냇가에는 물이 없고 사냥꾼의 손에 목숨을 잃어 버리게 된 사슴과 같습니다.
사슴이 시냇가를 향해 갈망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행복해지길 원하는 갈망으로 살아갑니다. 행복해지려고 고생, 고생하며 돈을 벌고 자식들이 행복해지라고 힘겹게 공부도시키고 좀 더 나은 나라에서 살면 행복해질까 이민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으로는 우리의 갈증을 채울 수 없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그 누구보다 더 그것을 잘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전도서 첫 시작을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힘든 이민 생활의 장점을 꼽으라면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낯선 곳에서 자기에게 익숙한 문화와 습관, 삶의 태도를 바꾸고 새롭게 할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갈증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물이 되리라(요4:14)”라고 말씀하십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