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4 복음서 모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한 사건에 대해서 기록을 남깁니다. 4복음서는 각기 조금 다른 강조점을 두고 있지만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성전정화 사건에서 성전을 “내 집”이라고 정의 내리십니다.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 성전은 구약의 성막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윗의 장막,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의 성전, 헤롯 성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을 만나 기도(예배)드리는 곳으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하나님의 집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지 이해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여정을 이끌었던 성막은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후 사람들에게 잊어져 버리려 언약궤만 남겨져 버립니다. 그 후 언약궤는 다윗의 장막에 잠시 거하다가 솔로몬 성전이 건설되고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기능을 잘 감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에스겔은 환상 가운데 성전 (하나님의 집)에서 버젓이 세워진 우상과 그 우상에게 드려지는 우상숭배를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집을 버리고 떠나는 충격적인 사건을 봅니다. 이 후 바벨론 포로들의 귀환으로 스룹바벨은 성전을 다시 짓습니다. 그러나 이 스룹바벨의 성전에서도 느헤미야는 도비야라는 사람을 위한 방을 만들어 둔 사실이 발견되어 충격을 줍니다. 이 후 스룹바벨 성전은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율법에 부정하다고 여기는 돼지피로 제사를 드리고 제우스 신상이 세워지는 모욕을 받고 무너지게 됩니다. 이 후 헤롯이 이 스룹바벨 성전은 개축하여 예수님 당시의 성전으로 지었습니다만 그곳은 온갖 장사치들의 소굴로 변해 있었습니다. 결국 헤롯 성전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져 버립니다. 그리고 현재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성전 터의 일부만 남은 상태입니다. 참 슬프고 안타까운 성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언젠가 세워질 진짜 성전에 대한 예언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뤄지면 또한 예수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믿음의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짓겠다는 말씀으로 이뤄집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가 하나님의 집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해 지난 2천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 예배 드렸습니다. 물론 여전히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선한 목적이 아닌 다른 것으로 악용되거나 오용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새 성전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세계 어디서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 예배드림이 가능해졌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에 대해서 곰곰이 돌아보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주님을 만나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여전히 집을 빼앗아 주인 행세를 하는 강도처럼 하나님이 아닌 내 자신이, 돈이, 편함이, 사람이… 주인행세를 하며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다윗의 장막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리기엔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작은 천만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성전들 보다 하나님의 만나는 기쁨이 가득 넘쳤던 곳입니다. 오늘 작은 다트머스 한인교회가 그러한 다윗의 장막처럼 이 땅 가운데 세워져 있기를 소원합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