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을 입으라”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특별한 옷을 입었던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첫 번째는 졸업가운입니다. 졸업가운은 그 사람이 학력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도록 성장했다는 증명으로 주어집니다. 즉 옷은 우리의 성장과 현재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지금 나의 현상태를 보여주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장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결혼 예복입니다. 결혼 예복은 결혼이라는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는 주인공으로서 배우자와 결혼예식에 참여한 모든 이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로서 결혼 예복과 같은 매일의 거룩한 삶을 입고 우리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세 번째는 목사 안수식의 성의입니다. 목사 안수식의 성의는 목사라는 거룩한 일을 감당하는 이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판사, 의사, 군인, 요리사, 헤어디자이너 등 자신의 기능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 14:12)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뤄가는 동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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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입어보지 못했지만 언제일지 모를 나의 장례식에 입을 수의입니다. 수의는 참 다른 옷과는 많이 다릅니다. 사실 옷의 기능을 따진다면 이제 죽어 썩어질 망자에게 옷은 필요 없지요. 그럼에도 우리 한국의 전통은 베옷이라는 특별한 옷을 세심하게 망자에게 입힙니다. 여기 캐나다도 비슷합니다. 멋진 정장으로 한껏 멋을 부릴 뿐만 아니라 망자의 얼굴에 화장과 심지어 헤어메이크업까지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수의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에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상징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들은 살아생전에 마지막 순간에 입을 수의를 준비해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무리 특별한 수의를 입고 멋지게 치장을 해도 관 속에 누운 망자를 부러워하는 이는 장례식에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죽음의 옷을 벗고 생명의 옷인 예수 그리스도로 갈아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옷을 입은 자는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로는 결정됩니다. 오늘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일지 우리는 모르기에 우리는 당장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합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성도 여러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된 여러분이 날마다 성령 안에서 성장하며 성숙되어지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 생명의 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시길 소원합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