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캐나다에서 가장 우선적인 혜택의 대상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복지와 교육시스템에 그 어떤 것보다 더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관심을 가집니다. 혹시라도 아이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처벌은 가중되어 더욱 엄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캐나다의 정책에 대해서 대다수가 당연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어린이들의 인권이 이렇게 인정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 이후입니다. 흔히 사회학자들이 말하기를 인류는 18세기에 들어서 “민중”을 발견하였고 19세기에 “여성”을 그리고 20세기에 “어린이”를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의 모습은 지금의 관점으로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부모쯤으로 혹은 맞벌이로 인해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생각한다면 본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어린이는 오랜 시간, 성인이 비해 미성숙한 불완전한 존재로서 그 존재 가치가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로서 존중받기 보다는 평가절하된 채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중동도 결코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쁘게 공생애 사역을 해나가시는 예수님께서 고작 어린아이들을 상대하시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제자들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그들이 예민하거나 남들보다 더 까따로워서가 아니라 그 당시의 당연한 보편적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보편적 사고를 뛰어넘어 예수님께 자기의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의 자녀들을 만져주시길 원했습니다. 이는 안수기도를 의미합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만나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자녀들도 예수님을 만나야 함을 알고 자녀들을 데리고 나와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구하며 나갔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신앙의 대물림은 결코 자연적인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개별적인 만남을 통해서 얻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의 부모에서 자녀로 혈육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만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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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 당시 미숙한 자녀들의 양육의 대한 모든 결정은 온전히 부모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자녀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양육의 결정을 예수님께 이양해 드립니다. 즉 예수님께 이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것까지는 부모가 도와주지만 그 아이를 만져주시고 그 아이와의 만남을 이루는 것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께 달린 것입니다. 즉 부모는 길을 제시해 줄 뿐 그 길을 걷게 하는 건 주님이십니다.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내가 만난 예수님을 우리 아이도 만나야 함을 알고 그 사랑하는 자녀를 주님 앞에 데리고 나오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만 예수님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부모의 권한이 아닌 예수님의 권한이라는 부모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아 다트머스한인교회 모든 아이들을 주님께서 만져주시길 부모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들을 주님 앞에 데려나오지만 그들을 만져주실 수 있는 건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다트머스 한인교회 담임목사 김승용